무릇 '해석'은 '의미 부여'와는 다르다. 의미 부여는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해석'이라 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단테와 같이 위대한 사람에게 자기의 의견을 부여하겠다는 태도는 모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해석이란 '의미의 발견'이다. 단테가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다. 단테에게 배운다는 자세 속에서 진정한 해석이 생겨난다는 것을 깊이 유념해 두어야 한다.'의미 부여'와 '의미 발견'은 그 차이를 자연과학 실험처럼 확연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단테가 '지옥은 정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맨 처음에 썼던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두면, 우리가 단테의 지옥을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할..
...그런데 imagination은 '상상(想像)'이라 번역되지만, 여기서의 '상상'은 적당히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 '像'은 '象'과는 달리 사람인변이 붙는다. '인상(印象)'은 사람인변이 없는 '象'을 쓴다. '인상'은 우리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각 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므로 오히려 타자가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먼 곳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느끼는 것, 또한 예를 들어 불가사의한 빛이 작열하는 비전은 '인상'이다. 그 '인상'을 바탕으로 "지금 들린 소리는 원자폭탄에 히말라야 산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고 표현한다면 이는 인위적인 행위로 창작한 '像'이다. 상상(想像)이란 인간이 지성으로써 인상(印象) 이상의 비전을 만들어 내는..
생각하는 독서독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떠넘기는 행위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타인이 밟았던 생각의 과정을 더듬는 데 지나지 않는다.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학생이 선생이 연필로 그려준 선을 붓으로 따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독서는 사물을 고찰하는 데 필요한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 스스로 사색하는 작업을 중지하고, 독서로 정신의 자리를 옮길 때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은 이 같은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그러나 독서만으로는 작가가 어떤 사상에 도달하기까지 힘들게 수고했던 운동량을 소화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근면한 사람일수록 조금씩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 항상 탈 것에 의존하면 마침내 걸어다니는 힘을 잃어버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권위를 앞세우는 사람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권위 있는 말을 인용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력과 통찰력을 활용하는 대신 타인이 남긴 침전물을 동원하고, 이를 자기 생각보다 더욱 확신한다. 물론 동원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능력조차 부족해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짓눌리는 자들도 많다. 이런 자들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세네카의 말처럼 "사람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한다."그러므로 어떤 논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주로 선택하는 무기는 권위이다. 그들은 수집한 여러 가지 권위를 무기로 선택한 후 서로 싸움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이런 싸움에 말려든 자가 자신의 근거나 논리를 무기로 삼은 후 자력으로 대항하더라도 권위에 취한 그들을 일깨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