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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2

조건과 원인 사태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려면 조건과 원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건'은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한길사, 2000) 에서 취한 개념입니다. 그에 따르면 '조건'은 "약간 특수한 것이긴 하지만 어떤 항구성을 지니고 있는 선행 여견"이며, '원인'이라는 말은 "그러한 선행여건, 즉 사건을 낳는 각종 힘 가운데서 이른바 차별적 요소를 드러내는 선행 여건"에 부여됩니다. 그런데 이 구별은 조금 모호한 것이므로 우리는 '시대의 바탕에 놓여있는 물질적 환경과 경제적 생산의 구조, 장기 지속적 흐름'등을 조건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p.438 『역사 고전 강의』 2012. 12. 6.
과학에 관한 3가지 관점 자연과학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을 살펴볼 때는 기본적으로 과학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과학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납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은 고려인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출판문화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속활자라는 기술과, 책이 많이 출판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선 과학기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놓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제도와 집단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과학자 역시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행위자임을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과학.. 2012. 12. 6.
지리학을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경관은 저절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 책은 잉글랜드의 풍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이른바 역사 지리학 책입니다. 지리학은 우리 삶의 근본 범주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 행위가 어떤 모습의 땅 위에서 펼쳐졌는지에 관한 감각을 충분히 익혀두어야 역사적 통찰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p.204 『역사 고전 강의』 2012. 12. 6.
동병상련, 역지사지 한국에서 많이 읽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카이사르를 다루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그 찬양의 정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어떤 관점에서 쓰인 것인지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역사 책을 읽으며 승리자의 편에 서서 자신이 그들과 한 편인양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처럼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갈리아 원정기』를 읽으면서 카이사르의 편을 들며 즐거워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라 하기 어렵습니다. 억압받고 고통받는 피지배 민족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가져야 정상이지 식민지를 착취했던 제국의 반성 없는 후손처럼 굴면 곤란하겠습니다.p.160 『역사 고전 강의』 2012. 12. 6.
대중이 사회의 주체가 되려면 세나투스(원로원)와 포풀루스(시민/하층민)의 투쟁은, 토지 문제와 그것에 근거한 재산권이 근본적으로 개혁되는 사회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내전의 세기'는 포풀루스의 불만을 흡수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운 일인자의 시대로 귀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혁명이 아니라 정치권 내부의 권력투쟁이 전개된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나 계층 간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갈등이 근본적인 사회 개혁으로 이어져 사회의 저변을 바꾸지 못하고 몇몇 지도자들 아래 대중이 몰려들어 그들의 세력을 키워 주고 그것이 유력한 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적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면, 수많은 대중들은 결국 사회의 주체가 아니라 장기판의 졸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p.155 『역사 고전 강의』 2012. 12. 6.
가난하고 미천할수록 나라를 더욱 지켜야 하는 이유 "미천하고... 걸어갔다"라는 문장은 이때 벌어진 사태를 탁월하게 집약하고 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부유한 자들은" 기존의 삶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마련했지만, "미천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가난에 찌든 다수의 사람들은" 온갖 고통과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았습니다. 미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나라가 망하면 고생길에 접어듭니다. 그러니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유한 사람들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든 말든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고 올바르게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p.142 『역사 고전 강의』 2012.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