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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2

죽음의 희망 Questi non hanno speranza di morte (Inf. Ⅲ. 46) '그러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Questi non hanno)', '죽음의 희망조차(speranza di morte)'. '그들에게는 죽음의 희망조차 없으니'.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곤 하는데, 지옥에서는 죽음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지옥의 영원한 고통은 그곳에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간혹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자살에는 아직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는 희망, 즉 '죽음의 희망(speranza di morte)'이 있다. 그것마저도 없는 상태가 지옥이라고 단테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p.194 『단.. 2012. 12. 7.
'의미 부여'와 '의미 발견' 무릇 '해석'은 '의미 부여'와는 다르다. 의미 부여는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해석'이라 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단테와 같이 위대한 사람에게 자기의 의견을 부여하겠다는 태도는 모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해석이란 '의미의 발견'이다. 단테가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다. 단테에게 배운다는 자세 속에서 진정한 해석이 생겨난다는 것을 깊이 유념해 두어야 한다.'의미 부여'와 '의미 발견'은 그 차이를 자연과학 실험처럼 확연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단테가 '지옥은 정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맨 처음에 썼던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두면, 우리가 단테의 지옥을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할.. 2012. 12. 5.